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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호박국에 어리는 두 남자 외 1편나의 이야기 2023. 1. 17. 00:01
갈치호박국에 두 남자
최연숙
첫사랑을 만나러 통영에 간 백석이
객줏집에서 홀로 떠먹었을 갈치호박국
나락 탈곡하는 날 마람 엮는 날
엄마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갈치호박국을 끓였다
비릿한 갈치와 호박의 들큼한 맛이
조화를 부려 논 두레상에서
가시를 발라주던 엄마의 분주한 손끝
잊고 살아온 갈치호박국 위로
고향집 대추나무 아래 덕석이 펼쳐진다
그립단 말도 희미한 이제
그리운 이름마저 듬성듬성
호박국에 갈치 토막처럼 떠돈다
입의 기억은 세월과 반비례인가**************************************
죽은 새끼를 물고 / 최연숙
지중해 안탈리아 해변가
뜨거운 모래밭에서 물개 한 마리
몇 시간째 울부짖는다
목은 쉬고 눈가에 눈물이 흥건히 젖은
어미 물개 앞에는
사산한 새끼가 널브러져 있다
어미는 새끼의 몸에 자꾸 얼굴을 갖다 댄다
급기야 물에 닿으면
혹 살아나지나 않을까 하고
새끼를 물고 물가로 간다
새끼가 미동도 보이지 않자
이번엔 죽은 새끼를 모래밭에 내려놓고서
이번에는 바다를 막아선다
죽은 새끼 앞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에미의 마음
뉴스에서는 자식을 죽인 비정한
젊은 여자가 얼굴을 가리고 차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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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숙 시인
2005년 《시평》으로 작품활동 시작.
2020년 《미네르바》로 등단.
경기문화재단 문예기금 수혜.
시집 『기억의 울타리엔 경계가 없다 』『유다의 하늘에도 달이 뜬다』
『모든 그림자에는 상처가 살고 있다』
수필집 『작은 풀꽃의 사중주』등. 현 계간《생명과 문학》편집위원
-작성 김길순-'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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