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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뭐라카노나의 이야기 2024. 4. 2. 00:01
이별가 박목월 뭐락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 니 머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내리는데 -박목월, 중에서 여기서 동아밧줄은 무덤에 관을 내리는 밧줄을 의미한다. 이 동아밧줄을 시인은 '죽음' 지칭하기 위해 사용했다. 그렇다고 동아밧줄이 있어야 죽음이 된다거나 죽음이 있어야 동아밧줄이 형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만큼 동아밧줄과 죽음 사이가 결합되어야 할 필연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가 환유이다. 환유와 제유는 흰옷과 우리 민족 사이의 환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두 사물들 사이의 인접성 때문인것이다. ※ 환유와 제유는 모두 어떤 사물을 그것과 연관성이 있는 다른 사물로 대신하는비유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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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안개꽃, 꽃 안개나의 이야기 2024. 3. 31. 00:01
안개꽃, 꽃 안개 나호열 한아름의 꽃을 안개라 하고 안개 그 앞에서는 꽃이라 우겨대는 이쁜 사람들 틈에 꽃을 보아도 꽃으로 보이지 않고 불현 듯 내 앞에 서는 안개를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갑자기 시력이 떨어진 그 틈에 눈물이 떨어진다 꽃이 되기 위하여 안개가 되기 위하여 소금기 머금은 눈물이 가득한 빈 화병 나호열 충청남도 서천 출생. 무크지 우리(1981)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 시집 『』담쟁이덩굴은무엇을향하는가,『망각은하얗다』 『칼과집』 『영혼까지독도에산골하고』등이 있음 -작성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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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그 계단나의 이야기 2024. 3. 30. 16:01
그 계단 마경덕 내 상처의 목록 맨 앞줄에 가파르고 비좁고 어둑한 계단이 있었다 그 계단 끝에는 한참을 망설이던 전당포가 있었다 이것저것 캐묻는 낯선 사내에게 훔쳐 온 물건을 꺼내듯 결혼반지를 내민 손이 떨고 있었다 보랏빛 사파이어 반지 하나가 불안한 표정으로 철창 안 주인을 쳐다보았다 “만 원 쳐줄게요” 결혼 패물과 아이 돌반지는 시어머니 몰래 다급한 큰언니의 손으로 넘어가고 남편도 모르는 약속 하나는 끝내 내게 돌아오지 못하고 그날 두 번째 비밀이 추가되었다 아이 손을 잡고 내려올 때 손등에 떨어진 눈물이 보석처럼 반짝 빛났다 청량리 역전 어디쯤, 영혼까지 저당잡힌 그 전당포에 춥고 어두운 계단이 있었다 2024. 봄호 ********* [ 마경덕 시인 약력 ] * 등단 :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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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물고기 비가 내리는 마을나의 이야기 2024. 3. 28. 16:01
물고기 비가 내리는 마을 강우근 물고기 비가 내리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도 왜 물고기 비가 내리는지 모릅니다 예기치 않게 비가 내려서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는 사람이 있고, 물고기를 촬영하여 미디어에 알리는 사람이 있고, 물고기를 조용히 냇가에 풀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다른 의미로 물들어가는 물고기의 축제는 슬프고 괴롭고 아름답기도 합니다 빗물 속에서 죽어가거나 촬영되거나 헤엄치는 물고기의 투명한 비늘에는 사람들의 눈동자가 일렁입니다 물고기 비가 내리지 않을 때에도 투두둑, 투두둑 비 떨어지는 소리에 사람들은 바깥을 나가봅니다 심해처럼 어두운 밤하늘에서 저마다 다르게 비치는 물고기의 몸짓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동공처럼 밤하늘을 유영하는 물고기는 소멸하는 별처럼 터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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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아버지의 마음나의 이야기 2024. 3. 27. 16:01
아버지의 마음 김현승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 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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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의 작품나의 이야기 2024. 3. 26. 16:01
최치원의 작품 신라 말엽, 어지러운 속세를 버리고 가야산에 묻혀 살았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을 떠올려 본다. 그는 이 가야산의 일곱 골짜기 중에서도 물소리가. 가장 요란스럽고 아름답다는 홍류동紅流洞 돌벼랑에 한시 漢詩한 수를 친필로 새겨 오늘에 이르게 하였다. 한시 한 수 풀이 글을 올린다. * 광분첩석후중만狂奔疊石吼重巒 인어난분지척간人語難分咫尺間 상공시비성도이常恐是非聲到耳 고교유수진농산故敎流水盡籠山 첩첩한 바위사이 미친 듯 흐르는 물이 겹겹이 산을 울려 바로 지척의 말소리조차 분별하기 어렵구나 속세의 끓임없는 시비 소리가 들릴까 두려워 흐르는 물소리로 온산을 다 덥는구나 ***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 흐름은 여전히 이어져서 시적인 풍치를 자아 내어주고 있다. 작성 -김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