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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을 보며 김길순 가을 햇살이 메밀꽃 텃밭을 태우네. 봉평을 찾아와 텃밭에 서면 눈부시게 수만 송이 소금처럼 반짝이네. 마른 꽃대는 홍학다리처럼 빨갛게 물들어 꽃들 받쳐 들고 바람이 불면 일렁이네. 온몸으로 가슴 저미어 약속에 여무는 까만 씨앗들 후년을 약속하며 홍학들 ..
그대 같이 오지 않아도 김길순 그대 오지 않아도 푸른 바람 반짝이는 오색단풍 선물 한 아름 안겨주네 억새풀길 지날 때면 억센 남성의 매력으로 줄줄이 서서 고개 흔들며 인사도 해주네 산정호수 둘레길 꼬불꼬불 다돌고 보면 갈비한식집 군침돌게 다가오고 가을걷이 채소내다 파는 수..
신발을 벗고 산을 타는친구 김길순 경주토함산 산등성이에 사는 친구는 불면증에 시달림을 이기려 신발을 벗고 높은 산을 오르내리며 요즘 강행군을 한다 했다. 거기 산은 나도 올라봤지만 사금파리 모래가 바스락하는 미끄러운 산길이다. 내 짐작대로 친구는 발이 찢기어 치료를 해가..
탱자 김길순 늙어도 아주 곱게 늙었다. 가을이면 미선이가 부럽다. 그 쭈글쭈글한 얼굴에서 순하게 살아온 인생을 읽는다.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간 후 가시 울타리 속에서 탱자가 익듯이 그녀의 말씨에서는 향내가 난다. 경주 최 부잣집 뒷마을 황남리 과수원 울타리 손짓하뎐 탱자처럼 ..
감기몸살 김길순 가을바람 선선하게 부는 시장거리를 지나온다. 마천루 같은 아파트들이 흔들흔들 감기몸살에 흔들리고 있다. 이번에는 병원엘 들리지 않고 감기몸살을 물리쳐 보아야지 하고 콩나물과 북어도 샀다. 낮잠을 계속 잤다. 내일 남한산성 만나는 약속은 보기 좋게 깨지고 마..
이러한 여자를 찾는 남자 김길순 마음씨 고운 여자를 찾습니다. 옷은 화려하지 않으면서 품위를 잃는 법이 없고 화장은 하되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옷매무새만 고치고 나온듯한 수수한 여자를 찾습니다. 장미꽃같이 화려한 여자보다 해질녘 초가지붕에 피어있는 박꽃같이 조용한 여자를 ..
폐가를 보며 김길순 폐가의 깨어진 유리창으로 해묵은 나뭇가지들이 멈춰선 시계를 기웃거린다. 쓰레기통을 뒤지던 도둑고양이들 떼로 몰려와 자기들 세상이라고 어린아이 울음을 흉내 낸다. 쥐들이 문틀을 썰어도 쥐를 잡지 않는 고양이들 감잎처럼 흩어지고 찢겨진 거미줄 사이로 햇..
허봉선 채색화<메밀꽃 내 누이같은> 가을날 김길순 가을은 조락의 계절이다. 목이 시리도록 높아진 하늘을 올려보면 마음은 까닭 없이 나그네처럼 외로워지고 시골 한길 가에 아련히 피어 손을 흔들어 주던 코스모스도 생각나는 요즘이다. 언제나 추억은 아름답고 추억 속에 국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