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시)김장화엄 외1편

해바라기 진 2022. 3. 15. 00:03
 
 
 

                                                                    김장화엄

                                 박위훈
 
배추 결구의 완성은
산발한 머리통을 끈으로 묶어주는 것
 
결구 된 배추가 화엄을 이룬 부도浮屠 같다
 
아버지는 생갈치를 넣자 하고
어머니는 닦달해놓은 밴댕이를 냉동실에서 꺼낸다
아내와 말로만 거드는 딸내미
생새우를 다진 게 시원해서 좋단다
당신은? 눈으로 묻는 아내에게
오젓, 육젓, 병어젓, 황석어젓도 다 싫고
‘당신 젓’뿐이라고 농을 던지자
아내의 얼굴이 양념 색깔처럼 붉어졌다
 
언제부턴가 아내가 신처럼 모시는 자가 있다
그는 대단한 종파의 교주다
‘김치냉장고’라는 신흥 교주에게
여자들은 평생 머리를 조아리며 산다
그래도 나는 항아리 속 김치가 더 맛있다
아내는 요즘 누가 김칫독을 땅에 묻냐며
지청구를 해대지만 싫지 않은 눈치다
 
해마다 섣달그믐이 지나면
이름으로밖에 뵌 적 없는 외할아버지가
달보드레한 김치를 맛보러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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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다른 글                    

조강

-참게 이야기

 

                                       박위훈

 

강의 품이 넉넉해 여럿 풀칠했다는 말

귀 아프도록 외할머니께 들었던 조강祖江

 

가을이면 뻘의 발등을 타고 오르는 알배기 참게를

짚 가마니에 한가득 쓸어 담던 손속이

가문 기억처럼 아슴아슴하다는 보신암*을 아이는

보시람 보시람이라 불렀다

대남방송을 자장가 삼아 할미 무릎을 베면

나직이 귓전을 찰랑이던 강물소리

집 떠난 이들의 설운 울음이라던 외할머니

산수傘壽의 물결에 휩쓸린 지 오래

 

참게도 가끔 해거릴 하는지

철책을 넘어 참게군단이 상륙한다는 보시람의 농에

이념의 굴레는 게딱지처럼 탈피도 않는다며

농 아닌 진담으로 되받으면

여여한 강물 출렁이며 맞장구치고

 

그해 겨울

성엣장에 포성까지 얹어 강을 건넌 아버지,

한 갑자 훌쩍 허리 굽은 도강渡江의 염원을

집게발로 물고 강을 넘노는 참게를

마냥 잡을 수도 없는

 

이 생애에는 왜 그리운 것들만 더디 바래지는지

애먼 바람의 옷자락만 움켜쥐는

 

 

* 경기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 조강 인근 자연부락.

시집 『왜 그리운 것들만 더디 바래지는지』 2022년 상상인 시선
 
박위훈 시인 
202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문예감성> 등단. 
시집 『왜 그리운 것들만 더디 바래지는지』 2022년 상상인 시선
달詩, 반딧불이 동인.

                                                                           -마경덕 카페에서 발췌 작성 김길순-

 

 

부산항 홍덕기 사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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