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 엘리엣의 「황무지」
그가 쓴 황무지에는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슈타른버거 호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어요,
우리는 주랑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 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저는 러시아 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이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촌 태공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줬는 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 나오는가?
인자여, 너는 말하기는커녕 집착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곳엔 해가 쪼아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생략-
이 죽음을 통한 재생은 <황무지>뿐 아니라 엘리엣의 여러 다른 시와 사극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하고 있다. 이 작품을 긴 서정시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황무지」(1922)의 발표와 더불어 엘리엣은 <현대시>에 관심을 보였다.
시뿐 아니라 그의 평론은 신비평New Criticism을 생기게 했고 ,
1960년대 중반까지 그의 이름은 대학가의 문학론을 압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비낭만적이고 지성적인 자세는 시와 평론뿐만 아니라 소설,
희곡 그리고 예술의 거의 모든 영역의 평가에까지 스며들었던 것이다.
그는 현대인의 자아를 중시하면서도 전통적 고전주의를 주장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말한 시인은 바로 <황무지>를 쓴 T.S. 엘리엇이었다.
T.S.Eliot
1888년 미국 미주리 세인트루이스에서 출생
1910년 하버드 대학 대학원 졸업
1915년 <프루프록의 사랑 오래>발표
1922년 <황무지>발표1925년 <엘리엣 시선>출간 이후 시집 다수 출간
1948년 노벨문학상 수상
1965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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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1960년 4월 19일 사월 혁명 의거를 기억 할 것이다.
그 이후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한 것은 꽃다운 나이에 쓰러져간 학생들을 떠올리며 4월은 잔인한 달
사월 희생된 학생들을 기리며 4.19기념 탑도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학생혁명기념탑은 묘지 가운데 사월학생혁명 기념탑이 서 있다. 조각가 김경승이 제작한 이 탑은 화강암 탑주 일곱 개를 중심으로 주위에 수호자상과 만장을 두른 형태로 되어있다. 탑문은 이은상이 다음과 같이 작성하여 김충현의 글씨로 새겨졌다.
1960년 4월 19일 이나라 젊은이들의 혈관속에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 수 있는 피의 전통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부정과 불의에 항쟁한 수만명 학생대열은 의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 세웠고 민주제단에 피를 뿌린 185위의 젊은 혼들은 거룩한 수호신이 되었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속에 그들의 피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 되살아 피어나리라.
그래서 4월이 되면 죽은 자를 기리는 글과 4.19에 희생된 학생들 영혼을 떠올리게 된다.
<작성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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