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봄이 달력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해바라기 진
2024. 1. 31. 03:01
봄이 달력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이은규
꽃봄을 줄게, 봄꽃을 다오
중얼거리는 사이 저만치 기억이 오다
경고에 가깝거나
안내보다 먼 문장들에 오래 머뭇거리는
꽃잎 한 점 떨어져도
봄빛은 줄어든다고 말한 목소리는 이제 없다
투명하게 웃는 얼굴들이 희미해지는 동안
안 보이는 발자국을 따라 길을 나서면
순간은 얼마나 긴 영원일까
끝나는 듯 시작되는 길 위, 우두커니
무심코 지나친 풍경이거나 놓쳐버린 시간
저기 어떻게 흩날려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고요하게 흩날리고 있는 점점의 벚꽃들이
사이드 미러 풍경 안에 고여있다
그 시간 속에 씌여 있는 한 줄 문장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기억은 언제나 우리를 앞지르며 도착해있다
봄이 달력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모든 봄은 지난봄을 간직한 채 피어오르고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지 말라
경고에 가깝거나
안내보다 먼 문장들에 머뭇거리지 않기 위해
이제 우리는 지난 사건을 발견하며
그 사건으로부터 뒤돌아보면서 나아가야 한다
그러니 봄꽃을 줄게, 꽃봄을 다오
저만치 기억이 오다 선언하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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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1978년 서울 출생. 2008년 〈동아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다정한 호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