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시) 귤과 달과 그토록 많은 날들 속에서

해바라기 진 2024. 7. 11. 00:01
 

 

 


귤과 달과 그토록 많은 날들 속에서                                

                                       홍순영


달을 만질 수 없어서
귤을 만진다


너는 노랗고 둥글다는 이유만으로
내게 와 달이 되고,
나의 손바닥에 붙들린 우주가 되고


이곳에서 차디찬 귤 하나를 들고
너의 이름을 부른다는 상상만으로
나는 둥근 목소리가 되지
허공에 뜬 비상구를 두고
너와 나는 가쁜 숨을 공유하지


달은 나날이 커지고


우리는 분명 저곳으로 사라질 수 있을 거야


분명하고 유쾌한 예언을 품고
하루를 굴리지
애써 말하지 못하는 눈사람이 되지


데구루루 굴러온 귤이 눈앞에 수북이 쌓이고
달은 하나, 둘, 셋......
아아, 이토록 많은 너와 나의 날들이라니

************************************************


*
홍순영 시인

2011년 <시인동네>로 등단.
2011년 수주문학상 대상 수상.
시집『우산을 새라고 불러보는 정류장의 오후』『오늘까지만 함께 걸어갈』『귤과 달과 그토록 많은 날들 속에서』

 

 

귤 이미지 발췌해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