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마지막 산책

해바라기 진 2025. 7. 6. 00:01

 

 

 

 

 

 마지막 산책 

         

                                              나희덕

 

우리는 매화나무들에게로 다가갔다

이쪽은 거의 피지 않았네.

그녀는 응달의 꽃을 안타가 워 했다

자신의 삶을 바라보듯

입 다문 꽃망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땅은 비에 젖어 있었고

우리는 몇 번이나 휘청거리며 병실로 돌아왔다

 

통증이 그녀를 잠시 놓아줄 때

꽃무늬 침대 시트를 꽃밭이라 여기며

우리는 소풍 온 것처럼 차를 마시고 빵조각을 떼었다

오후에는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며

문장들 속으로 난 숲길을 함께 서성이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죽음, 이라는 말 근처에서

마음은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피지 않은 꽃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침묵에 기대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기에

임술도 가만히 그 말의 그림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응달의 꽃은 지금쯤 피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다시 산책을 나가지 못했다

 

시간의 들판에서 길을 잃었는지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니, 길을 잃은 것은 나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발자국 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시집(파일명 서정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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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대학교수

 

출생1966년 2월 8일, 충남 논산시 소속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학력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 데뷔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뿌리에게' 등단
경력2019.03.~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인문사회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
수상2022.12. 제30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