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바람 바람 바람

해바라기 진 2025. 7. 1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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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바람, 바람

 

                               고남걸

 

바람이 분다는 것은

누군가가 누군가를 끌어당기는 기척

그런데 나에게는 끌려가는 것만 있다

어머니를 닮았을까

아버지를 흉내 냈을까.

어머니의 미풍은

아버지의 강풍을 가라앉히는 데 평생을 바쳤다

바람을 쫓던 아버지가 역풍을 맞아

스스로 숟가락도 들지 못하는 몸이 되어

요양병원에서 와해 될 때까지…

기압이 생긴다는 것은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체증으로 남았다는 뜻이다

집안에서 아버지는 늘 기압이 낮았다

그러나 읍내 삼거리에선 고기압으로 바뀌었다

소문은 모락모락 피어나는 뭉게구름처럼

아낙들 입에서 오르락내리락 떠다녔다

안쪽으로 메말라 가던 어머니의 눈이

태풍의 눈으로 변했다

아버지의 몸속으로 칼바람이 불어왔다

아버지는 그대로 중풍에 휩쓸렸다

이젠 아버지도 가고

어머니도 가고

후일담처럼 나만 홀로 남아

무슨 바람과 기압이 될까

궁리하는 중늙은이가 되었다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새 나를 닮은 바람이 내 안에 있었다

마침내 바람도 유전되고 말았을까

두 개의 바람이 몸을 들락거렸다

떠도는 바람과 뿌리 내린 바람 사이

어정쩡 내가 있다

그런데 너무나 좋다

아버지 어머니가 아직도 내 안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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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걸 시인

2020년 《열린시학》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해바라기 씨앗은 몇 개일까』가 있음. 경기도무형문화유산 제50호 이천거북놀이 이수자(전보존회장). 이천시청(농업기술센터)에서 근무했음. 녹조근정훈장 수훈

[출처] 마경덕 시인 카페에서. 작성자 김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