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를 쓰라기에
유서를 쓰라기에
김길순
오래 전 젊은 날, 그이와 함께 미국 여행을 했었다.
먼 비행시간을 거쳐 뉴욕 호텔에 도착했을 때
세미나 참석차 함께 온 단장님이 우리들에게 숙제를 내주셨다.
주제는 오늘 비행했을 때 갑자기 비행기가 추락한다면 이라는 가정으로
급박한 상황에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유서를 써보라는 것이었다.
오후에 이 자리 앞에 나와서 발표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날 스케줄은 자유의 여신상을 다녀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 때만해도 글쓰기는 나와 거리가 멀었었다.
허드슨 강을 배로 건너 진리의 등대를 들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에 도착했다.
그 유서를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머리를 짓눌렀다.
벤치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허드슨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부부가 탄 비행기가 저 강으로 추락한다면 하고 유서를 썼다.
유서
저가 당신 먼저 간다면 어린 삼남매 아이들을 당신께 잘 부탁해요.
혹여 거기서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젊은 날 함께한 시간들을
감사할 것입니다.
밤마다 서재에서 오랜 시간 학문연구에 여념이 없는 당신께
아침이면 따끈한 커피로 피로를 풀어 드리겠어요.
우리 함께 거기서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들으며
즐겁게 더 행복하게 살아요.
그날 오후에 앞에 나가 몇 장의 글을 낭독 했었다.
그 자리엔 고국을 떠나 온지 오래된 교포들도 있었다.
유서를 낭독하는 순간, 나름대로 자신의 최후의 순간을
그려가는지 눈물을 비치는 이도 있었다.
아아, 그 후 시간은 많이도 흘러갔구나!
지금 그러한 긴급 유서를 써보라면 나의 바램은
무엇을 당신께 드리겠다는 말보다는
다음 세상에서는 이렇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사항들이 더 많을 것 같은 내 마음,
이것은 순수하지 못한 욕심일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더 비운 후에야 유서다운 유서를 쓸 것 같다.
욕심은 또 다시 죄를 잉태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