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새싹을 보면서
고추 새싹을 보면서
김길순
쌀쌀한 초봄 베란다 화분에 고추씨앗을 뿌려놓았다.
한 달이 다 되어가니 고추새싹이 촘촘하게 돋아 나온다.
나는 가끔 화분에 파도 심어 싱싱한 새순을 베어 먹을 때
시골의 정감을 느끼곤 한다.
십년 전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사를 간 친구 집엘 작년에 가보았다.
황토 집에 들어가면 벚꽃나무와 마당에 잔디 심고 작은 연못까지 만들어 놓았었다.
그런데 넓은 땅에 채소는 별로 심지 않았다. 고추나무 여섯 포기와 들깨 잎을
따먹을 만치 두 고랑 심고 나머지는 조금의 부추를 심었다.
그리고 대파는 시장에서 한단을 사서 땅에 비스듬히 심어놨었다.
채소밭 옆에는 큰 드럼통에 빗물이 가득 있기에 내가 물을 주고 부추밭을
호미로 메어 주었다. 시골하면 채소를 가꾸는 재미는 누구나 상상을 하게 한다.
그 해는 진딧물이 심해 물주는 것도 포기한 상태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어찌하여 이 넓은 땅을 놀리느냐고 물어보니
이유가 있었다. 집 주의를 둘러싼 우거진 나무에서 진딧물이 날아와서 채소에
농약으로는 당 할 수 없더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풋고추 몇 개 달린 것에도
벌레집 투성이었다. 친구는 늘 작은 나무 꼬챙이와 비닐 봉지를 들고
장미나무며 여러 꽃나무에 벌레와 진딧물을 잡아 주는 것을 보았다.
지난겨울 우리 집에 친구가 왔을 때 베란다 문을 열어보고는 화분에 심은
파란 파를 보고 오히려 의아해 했었다. 시골도 너무 산 아래 집을 짓고 살면
벌레와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을 알았다.
나는 화분에 올라온 고추모를 보고 좁은 공간이지만 진딧물 때문에 많은
걱정은 안 한다. 물론 헷빛이 쏟아지는 넓은 텃밭 보다야 훨씬 안 좋은
조건이지만 몇 포기라도 길러 보고 싶어서이다.
풋고추에서 빨간 익은 고추가 될 때 까지 정성을 기우려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