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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연
조용미
태풍이 지나가고 가시연은 제 어미의 몸인 커다란 잎의
살을 뚫고 물속에서 솟아오른다
핵처럼 단단한 성게같은 가시봉오리를 쩍 가르고
흑자줏빛 혓바닥을 천천히 내민다
저 끔직한 식물성을,
꽃이 아니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꽃인 듯한
가시연의
가시를 다 뽑아버리고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나는
오래 방죽을 서성거린다
붉은 잎맥으로 흐르는 짐승의 피를 다 받아 마시고 나서야 꽃은
비명처럼 피어난다
못 가장자리의 방죽이 서서히 허물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금이 가고 있는 소리를
저 혼자 듣고 있는
가시연의 흑자줏빛 혓바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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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미 시인
1962년 경북 고령 생.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졸.
1990년 한길문학에<청어는 가시가 많아>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
1996년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 실천문학사)
2000년 <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을 날아오르다> ( 창작과비평사)
2004년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문학과지성사)
제16회 김달진문학상※ 마경덕의 추천시 마경덕 카페에서 발췌 -작성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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