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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 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이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鍾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曺)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든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둘러메고는
여러분의 행렬( 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일제의 가혹한 침탈에 저항한 이 시는 저항 시의 한 본보기로 꼽히고
있다. 조국 광복의 그날이 오기만 하면 목숨은 스스로 초개와 같이 버려도 좋다는 순애의 정신을 내비치고 있다.
1931년 3월 1일에 쓴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일제의 식민지 치하의 어둠 속에서 광복의 그 한날을 얼마나
치열하게 갈망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작성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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