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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을 생각하며
김길순
비가 쏟아지고 있다. 여름 장마가 시작되었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보니 문득, 중국 연변 생각이 난다.
몇 년 전 남편이 연변대 객원교수로 가 있을 때였다.
나는 아이들과 지내다가 일 년이 되었을 무렵 연변을 찾았다.
비행장에서 만나기로 한 남편이 보이질 않았다. 전화도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납치라도 당했을까.
별의별 생각이 꼬리를 물고 연달아 일어났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하여 통화가 되었는데
잠결에 전화를 받으면서 당신 내일 온다고 해놓고 왜 오늘 왔느냐는 대답이었다.
그런 뒤 십여 분쯤 지날 무렵 바로 남편이 호텔로 찾아왔다.
체중이 많이 빠진 상태로 술에 취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평소 술과 담배는 하지 않는 남편이었는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수상식에 참석한 후 그 학교 어느 교수님의 초대를 받았다고 했다.
잠깐 들렸다가 비행장으로 갈 요량이었다고 했다.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 그 교수가 권하는 대로 양주를 홀짝거린 모양이었다.
독한 술인지도 모르고 주는 대로 마셨다가 의식을 잃고 말았다고 했다.
자리를 함께한 교수와 시인이 대학의 숙소로 옮겨준 모양이었다.
그 때부터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채 잠이 들어 있다가 어렴풋하게 들리는 전화벨 소리에
깨어나게 되었다고 했다. 아내가 온다는 사실도 술 때문에 잊어버렸다고 했다.
다음 날부턴 백두산 여행길에 올랐고 가도 가도 옥수수 밭은 끝이 없었다.
백두산 가기 직전 강위로 다리가 있었는데 트럭이 수 없이 오고갔다. 그 강 건너 마을이 북한이었다.
그곳에 잡상인들은 대부분 한국말을 하는 조선족이었다.
백두산 천지로 가는 길엔 세찬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시달리는 꽃들이 키가 한뼘도 채 되지 못한 채 바람에 한들거리고 있었다.
천지에서 감상하고 내려오는 길엔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후 북경까지 갔다가 나는 비행기로 서울로 오고,
남편은 24시간이나 밤낮으로 달리는 열차로 연길로 향했다.
우리가 헤어질 때는 비가 내렸다. 지금은 헤어지지도 않는데 비가 내린다.
비도 나만큼이나 변덕이 심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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