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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덕 詩(불편한 휴식)을 읽고나의 이야기 2020. 1. 17. 00:30
마경덕 시인의 <불편한 휴식>을 읽고 / 김길순
불편한 휴식
마경덕
실직을 당한 가장처럼,
그는 무료하다
차일피일 여름의 끝을 미루다가
방구석에 서서
빈둥빈둥 눈칫밥을 먹는 중이다
발목이 서늘한 풀벌레 소리가 창을 넘어오도록
계절의 끝마디를 묶지 못해
어정쩡한 그에게
폭염이 밥이었다
몰려오는 열대야에 야근도 서슴치 않았다
그 많던 일거리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두 달이 넘도록 일을 굶은 선풍기는
맥이 탁 풀렸다
일거리가 없어 사장의 눈치를 보다가
떨려난 앞집 사내도
길에서 마주친 표정이
저렇게 머쓱했다
※ 실직한 가장이나 앞집 사내나 모두 일을 굶는 선풍기를 닮았다.
이러한 상사성(相似性)의 활용은 이 시인이 유추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런 시는 마치 한우불고기나 불갈비를 씹을 때처럼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어서 좋다.
※ <문학사계 2019년 겨울호에 발표한 시>
마경덕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신발론』『글러브 중독자』『사물의 입』
하철경 화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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