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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춘
    나의 이야기 2022. 2. 4. 00:03

     




    입춘(立春) / 백석

     

    『이번 겨울은 소대한(小大寒) 추위를 모두 천안 삼거리(天安三巨里) 마른 능수버들 아래 맞았다. 일이 있어

    충청도(忠淸道) 진천(鎭川)으로 가던 날에 모두 소대한(小大寒)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공교로이 타관 길에서

    이런 이름있는 날의 추위를 떨어가며 절기라는 것의 신묘(神妙) 한 것을 두고두고 생각하였다.

     

    며칠 내 마치 봄날같이 땅이 슬슬 녹이고 바람이 푹석하니 불다가도 저녁결에나 밤 사이 날새가 갑자기 차지

    는가 하면 으레이 다음날은 대한(大寒)이 으등등해서 왔다. 그동안만 해도 제법 봄비가 풋나물 냄새를 피우

    며 나리고 땅이 눅눅하니 밈이 돌고 해서 이제는 분명히 봄인 가고 했는데 간밤 또 갑자기 바람결이 차지고 눈

    발이 날리고 하더니 아침은 또 쫑쫑하니 날새가 메찬데 아니나 다를까 입춘(立春)이 온 것이었다.

     

    나는 실상 해보다 달이 좋고 아침보다 저녁이 좋은 것같이 양력(陽曆)보다는 음력(陰曆)이 좋은데

    생각하면 오고가는 절기며 들고나는 밀물이 우리 생활(生活)과 얼마나 신비(神秘)롭게 얽혔는가.

     

    절기가 뜰쩍마다 나는 고향(故鄕)의 하늘과 땅과 사람과 눈과 비와 바람과 꽃들을 생각하는데 자연(自然)이

    시골이 아름답듯이 세월도 시골이 아름답고 사람의 생활(生活)도 절대(絶對)로 시골이 아름다울 것 갔다.

    이번 입춘(立春)이 먼 산(山) 넘어서 강(江) 넘어서 오는 때 우리 시골서는 이런 이야기가 왔다. -중략-

     

    입춘(入春)이 드는 날 나는 공일 무휴(空日無休)의 오피스에 지각(遲刻)을 하는 길에서 겨울이 가는 것을 섭섭히

    여기지지 못했으나 봄이 오는 것을 즐거이 여기지는 않았다. 봄의 그 현란(絢爛)한 낭만과 미(美) 앞에 내 육체와

    정신(精神)이 얼마나 약(弱)하고 가난할 것인가. 입춘(入春)이 와서 봄이 오면 나는 어쩐지 까닭모를 패부(敗負)의

    그 읍울(悒鬱)을 느끼어야 할 것을 생각하면 나는 차라리 입춘(入春)이 없는 세월(歲月) 속에 있고 싶다.

                                                                                                                     <조선일보 1939.2.14>

     

                                                  *****************************

    백석은 1939년 1월 26일부터 예전의 조선일보 출판부에 다시 입사(入社)를 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조선일보

    2월 14일 자에 발표한 <입춘(立春)>에서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2월 5일 공휴일인 일요일에도 잡지 편집의

    일로 출근하였지만 지각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시인 산문(詩人散文)"란에 실린 이 글은 백석의 심경과 고향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 놀이가 가져다주는 즐거움 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작성 김길순-

     

     

     

    수달래 거창 월성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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