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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아름다운곳 외 2 편
    나의 이야기 2022. 3. 27. 00:03

     

     

     

    아름다운 곳 / 문정희

     

    봄이라고 해서 사실은
    새로 난 것 한 가지도 없다
    어디인가 깊고 먼 곳을 다녀온
    모두가 낯익은 작년 것들이다

    우리가 날마다 작고 슬픈 밥솥에다
    쌀을 씻어 헹구고 있는 사이
    보아라, 죽어서 땅에 떨어진
    저 가느다란 풀잎에
    푸르고 생생한 기적이 돌아왔다

    창백한 고목나무에도
    일제히 눈펄 같은 벚꽃들이 피었다
    누구의 손이 쓰다듬었을까
    어디를 다녀와야 다시 봄이 될까
    나도 그곳에 한 번 다녀오고 싶다

     


      흙  
                                    문 정 희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를 사랑한 도공이 밤낮으로
    그를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은 것을 본 일은 있다
    또한 그의 가슴에 한 줌의 씨앗을 뿌리면
    철 되어 한 가마의 곡식이 돌아오는 것도 보았다
    흙의 일이므로
    농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겸허하게 농사라고 불렀다

    그래도 나는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 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하늘이 우물을 파 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늙은 코미디언  
                                      문정희

    코미디를 보다가 와락 운적이 있다
    늙은 코미디언이 맨 땅에 드러누워
    풍뎅이처럼 버둥거리는 것을 보고
    그만 울음을 터뜨린 어린 날이 있었다
    사람들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아이가 코미디를 보고 운다고
    그때 나는 세상에 큰 비밀이 있음을 알았다
    웃음과 눈물 사이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어두운 맨 땅을 보았다
    그것이 고독이라든가 슬픔이라든가
    그런 미흡한 말로 표현되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 맨 땅에다 시 같은 것을 쓰기 시작했다
    늙은 코미디언처럼
    거꾸로 뒤집혀 버둥거리는
    풍뎅이처럼

    문정희시인, 수필가

    출생1947년 5월 25일, 전남 보성군학력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현대문학 박사데뷔 1969년

    월간문지학 시 '불면'경력2014.09.~2015. 제40대 한국시인협회 회장수상2015. 제8회 목월문학상

     

     

     

     

    오우석그림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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