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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미당이 아내에게 건네는 말씀 외 한편나의 이야기 2023. 2. 19. 00:01
미당이 아내에게 건네는 말씀
엄한정
미당이 보니 아내가
하루는 창문 너머를 보더니
'관악산이 웃는다.'라고 해.
참 묘한 말이야.
이백 도연명을 통틀어도 이런 표현을 못하지
당신이 시인이고 나는 대서쟁이야.
당대 최고의 시인인 남편으로부터
시의 스승이란 말을 듣기도 한 방옥숙 여사
면 년 전 귀가 어두워진 뒤부터
이층 서재에서 아내를 부를 때는
스위스 목동들이 부는 뿔피리를 불었다.
방 여사가 그걸 알아듣고 미당을 찾는 것이다.
그 아내가 고향 고창 선산으로 떠나는 날
기진한 미당은 방에 누워
'이제 하늘도 편안하다는 천안을 지나고 있겠지.
불쌍한 사람 지금 묻히고 있네.'
눈에 훤히 보이듯 말하며
입으로는 웃으면서도 눈물을 글성였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아호
동화의 시절
엄한정
나즈막한 순한 동산 둘레길에서
옛 친구들 저마다 품고 온 술에 취한다.
오랜만에 참소리 헛소리에
5월의 신록처럼 얘깃거리 판이 벌어진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어느덧 성큼 다가서는 석양
긴 세월에도 풀화되지 않는 우정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더 많지만
해어져 돌아갈 시간
동화의 시절 귀한 만남이
시간 속에 저녁 안개처럼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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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엄한정 - 아호 梧下. 念少. 1936년 인천출생. 성균관 대학교 졸업
시집-낮은 자리. 풀이되어 산다는 것. 머슴새. 꽃잎에 섬이 가리운다.등
1963년 아동문학(박목월 추천)지와,현대문학(서정주 추천)지로 등단
-문학 사계 2023년 봄호 발표 -작성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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