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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록파 시인들의 시를 본다나의 이야기 2023. 12. 5. 00:01
청록파 시인들의 시를 본다
김길순
이태준 주간으로 발행된 <문장> 지를 통해 정지용 시인은 청록파 시인을 모두 등단시켰다. 이러한
연유로 해서 3인공동시집 <청록집>이 나오게 되었다. 이 세 시인의 시집은 각기 자기 나름대로 시적
특성 또는 개성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박목월은 민요조의 리듬에 애틋하고 소박한 향토의 정조를 즐겨 그의 시 속에 담았다면,
조지훈은 회고적인 내용에 전어한 가락을 담은 시를 썼으며
박두진은 요설(饒舌)에 가까운 말씨에 기독교가 바탕을 이루는 신앙의 세계를 지니고 있다.
이 세 시인은 이러한 특성을 지니면서도 공통되는 요소도 지니고 있었다.
산이 날 에워싸고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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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화삼(莞花杉)-木月에게
조지훈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七百里)
나그네 긴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청산도.
박두진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어, 흰 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넘엇 골 골짜기서 울어오는 뻐꾸기.
산아, 푸른 산아, 네 가슴 향기로운 풀밭에 엎드리면,
나는 가슴이 울어라
흐르는 골짜기 스며드는 물소리에, 내사 줄줄줄 가슴이 울어라.
아득히 가버린 것 잊어버린 하늘과,
아른 아른 오지 않는 보고 싶은 하늘에,
어쩌면 만나도 질, 볼이 고운 사람이,
난 혼자 그리워라, 가슴으로 그리워라.
티끌 부는 세상에도 벌레 같은 세상에도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지운 나의 사람.
달밤이나 새벽녘, 홀로 서서 눈물 어릴 볼이 고운 나의 사람,
달 가고, 밤 가고, 눈물도 가고,
틔어 올 밝은 하늘 빛난 아침 이르면,
향기로운 이슬 밭 푸른 언덕을,
총총총 달려도 와줄 볼이 고운 나의 사람.
푸른 산 한나절 구름은 가고
골 넘어, 골 넘어, 뻐꾸기는 우는데,
눈에 어려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
아우성쳐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에
난 그리노라, 너만 그리노라
혼자서 철도 없이 난 너만 그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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