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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제
이예진
운동화를 뒤집어 모래알을 털어냈다 작고 섬세한 것이 흩날렸다 오랜 기간 동안 가루는 사포질 이후의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나는 목수의 딸인 것이 싫었다
입안이 꺼끌꺼끌해지도록 웃었지아버지는 화가 나면 사포질을 하곤 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가 만든 가구들이 두 눈을 치켜뜨고 나를 다그쳤다나는 심장이 벌렁대지 않도록 가슴에 못을 박았다
밖에서 쓸모를 기다리는 나무들이 우우 울었다사포질을 그만 둬
문지르면 소름이 돋는 팔처럼
소름을 문질러 지우는 손처럼
문지르고 있으면 뭐가 닳았는지 모를 것 같거든살던 집에 불을 붙이는 건 어떤 마음일까
집은 작년에 불타서 없어졌다 뼈가 부러진 가을이었는데고함을 지르면 사라지는 건 목이야
매일 새 집의 도안을 들여다봤지만
내가 살 수 있는 곳은 없었다구름을 등지고 걸어갈수록
나무에 쇠가 박히는 소음은 점점 커졌다* 2023년 당선 시집에서
이예진 시인
1998년 경기도 하남 출생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석사과정 재학 중
202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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