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시) 이상화<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중에서
    나의 이야기 2024. 4. 3. 00:01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중에서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일제강점기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민족시를 발표하여 민족정신을 고양했다.

    이 시를 보면 호미를 쥔다거나 부드러운 흙을 밟아는 행위에 근육의 움직임을 보게 된다. 손이나 발목, 살찐 젖가슴 등에서 육감적인 요소를 느끼기도 한다. 이처럼 근육의 긴장과 이완과 같은 움직임으로 역동적이다.

    이상화 시인 본관은 경주. 호는 무량·상화·백아.

    1916년 경성중앙학교에 입학해 1919년 수료하고, 강원도 일대를 방랑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학생운동에 참여하고 백기만과 함께 거사하려다 사전에 발각되어 잠시 서울에 피신했다.

    1921년 현진건의 추천으로 〈백조〉 동인에 가담했고, 1922년 프랑스 유학을 목적으로 도쿄[東京]로 건너가 아테네 프랑세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다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했다. 1925년 박영희·김기진 등과 함께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에 참여했고, 1927년 대구에 돌아왔으나 여러 번 가택수색을 당했으며 의열단 이종암사건에 말려들어 구금되기도 했다. 1937년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친형인 이상정 장군을 만난 이유로 5개월 정도 옥살이했다.

    독서와 연구에 몰두하며 〈춘향전〉을 영역하고 〈국문학사〉·〈불란서 시 평석〉 등을 기획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위암으로 죽었다. 1946년 경상북도 대구 달성공원에 상화시비가 세워졌다. -작성 김길순-

     

     

     

    봄 풍경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아침  (147) 2024.04.05
    (시) 4월  (147) 2024.04.04
    (시) 뭐라카노  (149) 2024.04.02
    (시) 4월의 불꽃  (162) 2024.04.01
    (시) 안개꽃, 꽃 안개  (137) 2024.03.31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