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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항아리 우물
    나의 이야기 2024. 7. 13. 00:01

     

     

     

     

    항아리 우물 

                                                 이삼현

    고향집 곳간에는 커다란 쌀독 하나가 있었지요
    바가지를 든 어머니가
    아침저녁으로 퍼 올리던 우물이었지만 늘 말라 있었습니다

    어둠을 뚫고 피어나는 연꽃 송이처럼
    발그레 동창이 물들 즈음
    바닥 긁는 소리에 잠을 설치곤 했습니다

    빠지면 풍덩 잠길 우물 앞에서 까치발을 들고
    공손히 허리 숙여 깊어진 어머니
    한 톨이라도 더 식구들을 먹일까
    고대하는 목마름으로 바닥을 훑곤 했습니다

    한껏 퍼 담고 싶은 바가지와 맨 바닥이 만나 지르는 비명
    몇 톨 남은 알곡들이 참새 떼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짹짹거렸습니다

    언제 적 끊긴 물길
    더는 샘솟는 우물이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아홉 식구의 공복이 피가 나도록 긁고 또 긁었습니다

    가을 한철, 겨우 차고 넘쳤을 항아리 우물
    아무리 퍼 담아도 한 바가지 어둠
    한 바가지 소란만 따라 올라올 뿐이었지만 어머니는

    정성껏 사철 바닥을 긁어모아
    다음 한 끼를 밥그릇에 담아주었습니다

    ************************************************

    『모던포엠』 2024년 7월호


    이삼현 시인

    2017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모던포엠 작가회 회원
    2022년 시집 ⌜봄꿈⌟ 생각나눔

    [출처] 항아리 마경덕 카페 작성자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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