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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수필 (마광수) 편나의 이야기 2016. 4. 29. 06:00
내 문학적 상상의 동행자 “긴 손톱‘-마광수 - 수필을 읽고
김길순
마광수 수필의 전문을 간단히 옮겨보면
나는 손톱이 긴 여인을 무지무지 좋아한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며 관능적 상상력을 키워 준 것은 언제나 “긴 손톱”의 이미지였다. 내가 평생 동안 동행해온
내 문학적 상상의 파트너는 아름 아닌 ‘길디긴 손톱’이 주는 관능적 엑스타시였던 것이다.
가학적인 용도로 쓰이던 손톱이 이젠 화사한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변했다는 점, 그로테스한 관능미의
심벌로 변했다는 점에서 나는 인류의 미래를 밝게 바라볼 수 있는 어떤 희망적인 예감을 얻는다.
꿈이 없는 현실은 무의미한 것이고 꿈과 현실은 분리되지 않는다. 꿈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적 실천을 가능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생략)
-나의 느낌-
사람마다 미적기준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여인의 손이 집안일이던
농사일을 거들어서 거칠어진 손을 아름답다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온실에서 가꾼 화초와 같이 보드랍고 때 묻지 않은 손을 예쁘다고 한다.
오래전 마광수 소설 "즐거운 사라" 등이 나와서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다.
얼마 전 <실험 수필> 윤재천 엮음에 실린 그의 수필 “긴 손톱”이란 제목을
보게 되었다.
세상이 많이 그쪽으로 가고 있는 미적 현상일까. 기준도 달라지고 있는가 보다.
거리에 나가면 미용실이 많았는데 요즘은 손톱정리해주는 워크샾이 많이 생겨났다.
쇼윈도에 비치는 모습은 머리만지기가 아니라 손톱 예쁘게 가꿔주는 곳이다.
손톱을 길게 붙이기도 하고 예쁜 그림이 있는 스티커를 붙이기도 하고
나 같은 사람은 불편해서도 못 가꿀 일이지만 마광수 수필에서는
즐거운 권태와 감미로운 퇴폐미의 결합을 통한 관능적 상상력의 확장은 사고를 보다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고 했다.
끝 말미에 이제부터는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상상을 단죄하는, 문화적 후진국의 작태를 되풀이하지 말았으면 한다. 라고 끝을 맺었다.
나는 아직은 미적 기준이 옛날과 변함은 없다. 현실은 달라지고 있다 한다 해도
미적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리라.고 생각하면서 수필을 본 후 느낌을 적어 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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