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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의 마지막 순간 사람들이 아쉬워 하는 것은
    나의 이야기 2020. 11. 14. 00:05

     

    이명재 화가 그림

     

    생의 마지막 순간 사람들이 아쉬워 하는 것은

     

    24년간 김영원(76)씨는 수천 명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나이, 성별, 직업은 달랐다. 다만 생(生)의 마지막 순간,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왜 진작 가족들에게 내 마음을, 사랑을 전하지 못했을까?"

     

    김씨는 1995년부터 고려대 안암병원 암(癌) 병동에서 호스피스 봉사를 하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 병동을 방문해 말기 암 환자 30여 명이 먹고 씻는 일을 돕는다.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달 5일 열린 2018 전국자원봉사자 대회에서 최고상인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환자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김씨 일이다. 때론 몇 주, 때론 몇 년씩 이야기한다. 환자들과의 대화는 홀로 남을 배우자에 대한 걱정, 자녀에 대한 죄책감으로 시작해 "왜 잘해주지 못했을까"라는 아쉬움으로 끝나곤 했다. "마지막에는 다들 부(富)나 명예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더군요."

     

    지난해 숨진 40대 초반 남성은 결혼 2년차에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환자는 "돈만 벌어다 주면 남편 역할이 끝이라고 생각한 게 너무나 후회된다"고 했다. 김씨는 "뒤늦게나마 가족들에게 속마음을 전한 환자들은 짧은 순간이지만 체온도 오르고 혈색도 좋아진다"고 했다.

     

    김씨는 한국 호스피스 1세대다. 스물일곱에 결혼하면서 다니던 직장을 관뒀다. 원불교 봉사단체인 원불교봉공회에서 활동하다가 호스피스에 대해 알게 됐다. 김씨는 "나이가 들면 죽음의 보따리를 챙기라는 말이 있지 않으냐"며 "삶과 죽음에 대해 공부하며 인생을 돌아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1995년 4월 집 근처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 과정에 지원해 1기생이 됐다.

     

    김씨도 "이렇게 오래 호스피스 봉사를 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처음에는 실의에 빠진 환자들로부터 모진 말을 듣고 자주 울었다. 1997년 한 환자를 만난 후로는 봉사를 그만 할 수 없었다.

     

    췌장암에 걸린 50대 중반의 경찰 고위 간부였다. 딸 결혼식은 다가오는데 몸 상태가 나빠 참석이 어려웠다. 김씨는 "신부 아버지 자리를 내가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다. 김씨가 결혼식에 다녀오고 3주 후 환자가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임종 전 '약속을 지켜줘 고맙다'며 손을 잡고 펑펑 우는 모습을 보며 이 일을 끝까지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40대 택시 기사는 2016년 췌장암으로 입원해 작년 9월 숨졌다. 19세에 결혼해 아들도 낳았지만 27세에 이혼해 20년 넘게 혼자 지낸 남성이었다. 헤어진 아들을 보려 했지만 아들이 거절했다고 한다. 남자는 어느 날 자신이 살던 월세방 보증금 500만원을 빼 20대 성인이 된 아들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제가 새해에도 살아 있고, 건강이 회복돼 일할 수 있다면 아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주고 싶네요." 일주일 후 남자는 숨을 거뒀다.

     

    김씨는 신입 호스피스 봉사자를 교육·관리하는 '호스피스 코디네이터'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그는 "봉사자들이 60~70대 고령 여성이 대부분인데 후임자 찾기가 쉽지 않다"며 "젊은이들도 함께 병동에서 봉사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봉사는 남을 위한 일처럼 보이지만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이에요. 호스피스 봉사를 하면서 저도 남편과 아이들에게 감정 표현을 더 많이 하게 됐거든요." (펌)            카페 -시인회의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강대원 화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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