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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윤성택 시(무위기)(경운기를 따라)두편을 올립니다.
    나의 이야기 2020. 11. 11. 00:05

    김이남 그림

     

    ★무위기 - 윤성택

    일일달력은 양파껍질처럼 벗겨도 벗겨도 한 여름이었다. 소주 사러 갔다가 난데없이 만난 소나기, 젖은 흙발로 방안까지 따라왔다. 가로수가 있는 교차로에서 벼룩시장을 지나 온 것이다. 라이터가 젖었는지 담배에 불이 붙질 않았다. 부싯돌처럼 번개와 천둥이 유리창에 금을 그었다. 라디오 주파수를 돌려가며 잡히지 않는 희망을 생각했다. 지리멸렬한 잡음 속으로 빗방울이 튀고 있었다. 양철지붕에서 모스부호처럼 타전되는 것은 막바지 手淫 같은 거였다. 내 청춘은 잘못 옮겨 적은 전화번호였다. 처마 밑 파문은 구인란 볼펜의 동그라미로 번지고 또 번졌다. 흥건하게 젖은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샤워꼭지 잡고 기도를 했다. 더위는 신앙처럼 깊어 갔다.


    ★ 경운기를 따라가다 - 윤성택

    모퉁이 돌아 나온 소리,
    아버지보다 먼저 도착했었네
    결 굵은 앞바퀴가 땅 움켜쥐고 지나간 길, 언제나
    멀미처럼 먼지 자욱한 비포장 도로였네
    그 짐칸 올라타기도 했던 날들 어쩌면
    덜컹덜컹 떨어질까 손에 땀나는 세월이었고
    여태 그 진동 끝나지 않았네 막막한 시대가
    계속될수록 나를 흔드는 이 울림, 느껴지네
    밀짚모자와 걷어올린 종아리, 흙 묻은 고무신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길
    양손 벌려 손잡이 잡고 몸 수그린 채
    항상 삶에 전투적이었던 운전법,

    아버지!
    그만 돌아오세요 이젠 어두워졌어요

    나는 보네
    울퉁불퉁한 것은 이제 바닥이 아닌 바퀴이어서
    일방통행길 높은 음역으로
    더듬거리듯 가고 있을 때
    숨죽이며 따라가는
    한때 속도가 전부였던 자동차 붉은 꼬리의 생각들,

    나는 아직껏 아버지를 추월할 수 없네

    ※ 윤성택시인 출생1972년 12월 25일, 충남 보령시데뷔 2001년

    월간 '문학사상' 등단수상 2014.02. 제10회 한국시인협회 젊은 시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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