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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거룩한 식사- 황지우나의 이야기 2021. 4. 6. 00:05
거룩한 식사
황지우
나이 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 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 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 세상 떠 넣어 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대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황지우
전남 해남 출생.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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