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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은 말한다 39 -
사도세자(정조)융릉
이오장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내 목소리 두려워
귀 막고 몸서리쳤을 뿐
뚜껑 덮이고 마지막 못 박힐 때까지
손톱 빠지고 피멍 들었어도
아버지 한번 부르지 않았다
열 가지 비행 읊어 내린 나경언은
눈길 피해 숨어 버리고
어머니와 장인까지 외할아버지 손잡고 등 돌려
살아날 구멍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린 아들 울음은 부왕(父王)호통에 묻히고
말 한마디 거들지 못한 아내는 바라보기만 할 뿐
이렇게 깜깜한 하늘인줄 몰랐구나
세 살 때 효경을 외웠고
일곱 살 때 동몽선습 독파하여 신동소리 듣던 내가
하늘과 땅을 몰랐으니 죽음인들 알았겠는가
산골에서 태어나 모르고 살았다면
뒤주에 갇혀 버림받지 않았으리
사도(思悼)라는 칭호 받았다고 입 닫으랴
아들이 둘러맨 연(輦)타고 한강나루 건너던 날
참았던 울음 한꺼번에 터져 강둑을 넘쳤다
화산 기슭에 연꽃봉오리 인석으로 둘러싸여
아버지의 부름 가깝게 들리지만
지금도 대답은 아내가 대신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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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어 서울시 동대문구 휘경동 배봉산에 묻혔으나
정조가 등극하여 경기도 화성군 화산기슭으로 옮겼다. 사도제자는 정조 때
왕으로 추종되지 못했지만, 고종황제 때 장조의황제로 추존되어 융릉이라는
능호를 얻었다. 융릉(隆陵)은 사도 세자와 헌경왕릉의 합장릉
* 이 시는 2021년 9월호 月刊文學631 에 실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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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장 약력>
-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PEN한국본부 문화발전위원
-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부천문인회 명예회장
- 제5회 전영택문학상, 제36회 시문학상 수상
- 시집: 『왕릉』 『고라실의 안과 밖』 『천관녀의 달』 『99인의 자화상』 등 16권
- 동시집: 『서쪽에서 해뜬 날』 『하얀 꽃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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