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시)애인
    나의 이야기 2021. 9. 4. 00:02

     

     

     

     

     

    애인

                                                                          김용택

     

     

    이웃 마을에 살던 그 여자는
    내가 어디 갔다가 오는 날을 어떻게 아는 지
    내가 그의 마을 앞을 지날 때를 어떻게 아는지
    내가 그의 집 앞을 지날 때쯤이면 용케도 발걸음을 딱 맞추어가지고는
    작고 예쁜 대소쿠리를 옆에 끼고 대문을 나서서
    긴 간짓대로 된 감망을 끌고
    딸가닥딸가닥 자갈돌들을 차며
    미리 내 앞을 걸어갑니다
    눈도 맘도 뒤에다가 두고
    귀도, 검은 머릿결 밖으로 나온 작고 그리고 희고 또 이쁜 귀도 다 열어놓고는
    감을 따러 갑니다
    커다란 느티나무 저만큼 서 있는 길
    샛노란 산국이 길을 따라 피어 있는 길
    어쩌다가 시간을 잘못 맞추는 날이면
    그 여자는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를 높이높이 올라가서는 감을 땁니다
    월남치마에다 빨간 스웨터를 입은 그 여자는 내가 올 때까지
    소쿠리 가득 감이 넘쳐도 쓸데없이 감을 마구 땁니다
    나를 좋아한 그 여자
    어쩔 때 노란 산국 꽃포기 아래에다 편지를 감홍시로 눌러놓은 그 여자
    늦가을 시린 달빛을 밟으며 마을을 벗어난 하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느티나무에다 등을 기대고 달을 보며 환한 이마로 나를 기다리던
    그 여자
    내가 그냥 좋아했던 이웃 마을 그 여자
    들 패랭이 같고
    느티나무 아래 일찍 핀 구절초꽃 같던 그 여자
    가을 해가 이렇게 뉘엿뉘엿 지는 날
    이 길을 걸으면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살아나와
    저만큼 앞서가다가 뒤돌아다보며
    단풍 물든 느티나무 잎사귀같이 살짝 낯을 붉히며 웃는,
    웃을 때는 쪽니가 이쁘던 그 여자
    우리나라 가을 하늘 같이 오래 된 그 여자

     

    **************************************************

     

    김용택시인, 전 초등학교 교사 출생1948년,

    전북 임실군학력순창농림고등학교 졸업데뷔

    1982년 시 '섬진강'경력2019.12.~

    섬진강 홍보대사수상2018.03.

    세계 물의 날 국민훈장 동백장

     

     

     

     

    제주 차귀도 일몰

     

     

    공감은 아래 하트를 눌러 주세요.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릉은 말한다  (0) 2021.09.07
    가을강(江)  (0) 2021.09.05
    '발타사르 그라시안'의 어록  (0) 2021.09.02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나탈리 골드버그)  (0) 2021.09.01
    8월의 기도  (0) 2021.08.28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