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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흘 민박
    나의 이야기 2021. 10. 3. 00:02

     

     

     

     

    사흘 민박

                                                                    이상국

     

     

    무청을 엮던 주인이 굳이 뭐 하는 사람이냐고 해서

    시 만드는 사람이라고 일러주었으나

    노는 가을 며칠을 거저 내주지는 않았다

    세상의 시인이 그러하듯 오늘도

    나 같은 게 있거나 말거나

    주인 내외는 근사하게 차려입고

    읍내로 잔치 보러 가고 나는

    지게처럼 담벼락에 기대어

    지나가는 가을을 바라보았다

    나보다 나를 잘아는 건 없었으나

    별로 해준 게 없었다

    돌아가면 이 길로 지구를 붙잡아매든가

    아이를 하나 더 낳았으면 좋겠다

    스승은 늘 분노하라 했으나 때로는

    혼자서도 놀기 좋은 날이 있어

    오늘은 종일 나를 위로하며 지냈다

    이윽고 어디선가 시커먼 저녁이 와서

    그쪽으로 들오리떼 폭탄처럼 날아간 뒤

    나는 라면에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땀을 흘리며 먹었다

     

    -시집『달은 아직 그 달이다』 2016년 창비

     

    **************************************************************

     

    이상국 시인:

    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

    1976년 『심상』에 시 「겨울 추상화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 『동해별곡』『우리는 읍으로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뿔을 적시며』등 시선집 :『국수가 먹고 싶다』

    백석문학상. 민족예술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박재삼문학상.

    강원문화예술상. 현대불교문학상 등을 수상

     

     

     

    백광숙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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