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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민박
이상국
무청을 엮던 주인이 굳이 뭐 하는 사람이냐고 해서
시 만드는 사람이라고 일러주었으나
노는 가을 며칠을 거저 내주지는 않았다
세상의 시인이 그러하듯 오늘도
나 같은 게 있거나 말거나
주인 내외는 근사하게 차려입고
읍내로 잔치 보러 가고 나는
지게처럼 담벼락에 기대어
지나가는 가을을 바라보았다
나보다 나를 잘아는 건 없었으나
별로 해준 게 없었다
돌아가면 이 길로 지구를 붙잡아매든가
아이를 하나 더 낳았으면 좋겠다
스승은 늘 분노하라 했으나 때로는
혼자서도 놀기 좋은 날이 있어
오늘은 종일 나를 위로하며 지냈다
이윽고 어디선가 시커먼 저녁이 와서
그쪽으로 들오리떼 폭탄처럼 날아간 뒤
나는 라면에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땀을 흘리며 먹었다
-시집『달은 아직 그 달이다』 2016년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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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시인:
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
1976년 『심상』에 시 「겨울 추상화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 『동해별곡』『우리는 읍으로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뿔을 적시며』등 시선집 :『국수가 먹고 싶다』
백석문학상. 민족예술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박재삼문학상.
강원문화예술상. 현대불교문학상 등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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