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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흙 외1편
    나의 이야기 2022. 4. 23. 00:03



     흙 

                                     문 정 희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를 사랑한 도공이 밤낮으로
    그를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은 것을 본 일은 있다
    또한 그의 가슴에 한 줌의 씨앗을 뿌리면
    철 되어 한 가마의 곡식이 돌아오는 것도 보았다
    흙의 일이므로
    농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겸허하게 농사라고 불렀다

    그래도 나는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 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하늘이 우물을 파 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유방

                                     문 정 희

     

     

    윗옷 모두 벗기운 채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끌어안는다
    찌그러지는 유두 속으로
    공포가 독한 에테르 냄새로 파고든다
    패잔병처럼 두 팔 들고
    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아
    유방암 사진을 찍는다
    사춘기 때부터 레이스 헝겁 속에
    꼭꼭 싸매 놓은 유방
    누구에게나 있지만 항상
    여자의 것만 문제가 되어
    마치 수치스러운 과일이 달린 듯
    깊이 숨겨왔던 유방
    우리의 어머니가 이를 통해
    지혜와 사랑을 입에 넣어주셨듯이
    세상의 아이들을 키운 비옥한 대자연의 구릉
    다행히 내게도 두 개나 있어 좋았지만
    오랜동안 진정 나의 소유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것이었고
    또 아기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나 지금 윗옷 모두 벗기운 채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안고 서서
    이 유방이 나의 것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아
    축 늘어진 슬픈 유방을 촬영하며

     

    문정희시인, 수필가

    출생1947년 5월 25일, 전남 보성군학력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현대문학 박사데뷔1969년 월간문지학 시 '불면'경력2014.09.~2015.

    제40대 한국시인협회 회장수상2015. 제8회 목월문학상

     

     

     

    이강미 화가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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