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시) 자화상
    나의 이야기 2024. 7. 4. 00:01

     

     

    자화상

                                                                                                          시인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애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술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도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

    ※ 이 <자화상>역시 그의 초기적을 대표하는 시 중의 한편이다. 그는 작품을 위해서 자기비하를 서슴지 않았다. 대체로 자랑스럽지 못한 부분은 숨기려고 하는 게 일반적인 통념인데 서정주는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밝히고 있어서 신선한 충경과 함께 감동케 한다. 종들의 자식이라는 남들의 멸시, 그것으로 인한 끊임없는 방황과 부끄러움, 그는 괴로웠던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삶의 시련과 고통이 오히려 그로 하여금 더욱 굳건한 생의 의지를 불러일르키는 힘이 된 것이다.(한국 현대시 400선)양승준,양승국,1996) 

    *******************************************************************************************

    ○서정주(1915~2000) 호는 미당(未堂). 전북 고창 태생. 소년 시절에 한학을 배우다가 중앙고보와 고창고보에서 수학함.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고, 김동리. 함형수 등과 시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 해방 후에는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에 앞장섰고, 1949년 한국문인협회 창립을 주도. 동국대에서 시문학을 강의함.- 작성 김길순-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와사등  (155) 2024.07.06
    사랑이란 주는 것  (146) 2024.07.05
    (시) 비가 오시는가  (165) 2024.07.03
    (시) 소주병  (153) 2024.07.02
    (시) 7월의 편지  (141) 2024.07.01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