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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아버지의 등을 밀며(손택수)
    나의 이야기 2020. 10. 29. 00:05

     

    이명재 작품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 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 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 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손택수 시인

    출생 음력 1970년 4월 13일, 전남 담양군 소속

    노작홍사용문학관관장학력부산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졸업

    데뷔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

    등단 경력 노작 홍사용문학관 관장 수상 2013.08. 제13회 노작문학상

     

     

     

     

    김인기 화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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