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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목재소에서 박미란나의 이야기 2021. 3. 11. 00:05
목재소에서
박미란
고향을 그리는 생목들의 짙은 향내
마당 가득 흩어지면
가슴속 겹겹이 쌓인 그리움의 나이테
사방으로 나동그라진다.
신새벽,
새 때들의 향기로운 속살거림도
가지 끝 팔랑대던 잎새도 먼 곳을 향해 날아갔다.
잠 덜 깬 나무들의 이마마다 대못이 박히고
날카로운 톱날 심장을 물어뜯을 때
하얗게 일어서는 생목의 목쉰 이름
꿈속 깊이 더듬어 보아도
정말 우린 너무 멀리 왔어
눈물처럼 말갛게 목숨 비워 몇 밤을 지새우면
누군가 내 몸을 기억하라고 달아놓은 꼬리표
날마다 가벼워져도
먼 하늘 그대
초목으로 발돋움하는 소리 들릴 때
둥근 목숨 천천히 밀어 올리며
잘려지는 노을
어둠에도 눈이 부시다.
※ 박미란의 <목재소에서>입니다.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입니다.
목재소의 생목들이 의인화되고 있습니다. 숲 속의 나무들이 베어져 실려 와서는
도시의 목재소에서 켜지고 나동그라지기까지의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가면서
생명의 슬픔과 환희를 담담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이 아름다운 작품 속에는
문명의 상처를 다스리는 사물들에 대한 짙은 애정이 스며있습니다.
작성-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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