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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 꽃 외 1 편나의 이야기 2022. 4. 7. 00:03
무꽃
배한봉
무꽃이 흔들리고 있다.물살이 한 물살을 밀고. 또 한 물살이 한 물살을 밀어 강물이 나아가듯 흰 나비가 흔들림의 결을 만들고 있다.
묵은 땅에 일군 자그마한 무밭의 아침,
버드나무 몇 그루가 흰 나비 날개 끝에서 번지는 공중의 떨림을 조용조용 보고 있다. 나도 한참 보고 있다.
바람 불지 않는데 흔들리는 것,
마음이 떨리는 것,
성스러운 시간이 움직이는 것,
나의 외진 마음이 한 물살을 밀고, 그 물살이 또 한 물살을 밀어 너에게 가 닿는 것.
그렇게 너와 나는 연결돼 있다. 하나가 돼 있다.
넓고 아득한 하늘 외진 곳에 태어난 빛이 무꽃에 와 닿듯,
무꽃 옆에서 흰 나비가, 넓고 아득한 공중의 외진 데까지 무꽃의 흰빛을 밀어 밀어서 가 닿게 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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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서가(書架)
배한봉
세상에는 불타올라도 타지 않는
서가(書架)가 있다, 타오르면서도 풀잎 하나
태우지 않는 화염도 있다
나는 저 불꽃의 마음 읽으려고
그렁거리는 차를 몰고 7시간이나 달려왔다
층 층 만 권의 책을 쌓아올린 채석강 단애
한때는 사나운 짐승처럼 시퍼런 칼날
튀어나오던 삶이었겠다
그럼에도 벼랑에만 매달려 사는
가마우지새에게만은 둥지를 허락하는 여자였겠다
악다구니 쏟으면서, 그게 가난에게 내지르는
주먹질이란 걸 알았던 것일까
가파를수록 정 많고 눈물 많은 달동네
노을의 그 지독한 핏빛
아 나는 기껏 몇 권의 습작노트를 불태우고
한 세계를 잃은 듯 운 적이 있단 말인가
이제는 저렇게 불타올라도 용암처럼 들끓지 않는
그녀의 삶, 삶의 문장으로 채워진 만 권의 책
오늘은 내가 가마우지새 되어
그녀의 서가에 한 권 책으로 꽂힌다
미친 힘으로 벼랑 핥는 파도도
바다의 불꽃으로 피어나고
비루한 삶의 풍경에까지 층층 겹겹
한 살림 불의 문장을 새겨주는 채석강 노을.
***
-시집 『육탁』 2022. 여우난골-
* 배한봉 시인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경희대 문학박사.
1998년 『현대시』 등단.
시집 『주남지의 새들』 『복사꽃 아래 천년: 소월시문학상 수상작품집』
『잠을 두드리는 물의 노래』『악기점』 『우포늪 왁새』 『黑鳥』가 있다.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박인환문학상〉 〈김달진창원문학상〉
〈경남문학상〉카페에서 옮겨옴. -작성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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