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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회 최연홍 문학상
    나의 이야기 2022. 6. 24. 00:03

     

     

      제1회 최연홍 문학상 - 이경희(워싱턴 디시)  

     
     

    가발 장수

                                                                                                                                       이경희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아픈 이름 하나가 제가 골라 준 가발을 쓰고서 아주 먼 길을 떠났습니다 정성스레 빗고 빗질한 가발 위에 어린 사과 꽃잎의 핀도 꽂아주었습니다 바짝 마른 꽃의 입술로 버티다 버티다 끝내 상한 몸을 두고 갔으니 더는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불 꺼진 상점 안에서 나는 조금 어두워진 그림자로 앉아있습니다 하나를 사면 하나를 끼워 팔던 흘러간 유행가 같은 가발들 바라봅니다 촘촘한 빗 사이로 걸려 넘어지는 세월의 잔상들, 물결 모양의 부드러운 머리칼이 모두 사라졌을 때 그녀가 쓰고 다니던 눈물로 얼룩진 모자가 긴 목에 짙은 눈썹을 가진 마네킹 위에 씌워져 있습니다

      미쳐 잊고 가져가지 못한 부칠 수도 없는 모자의 둘레가 조금씩 마르기 시작하고,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녀의 내력을 알 수 없는 그곳에서는 한 개 사면 한 개 공짜를 외치는 철없는 가발 장수가 있겠지만 생각건대 그런 시시한 가발은 그녀에게는 더는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가위며 심심해진 빗이며 핀 따위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가게 문을 나섭니다 성긴 눈발이 날리고 올해 첫눈입니다

     

    *******************************************
     



    한 사람의 손을 기억합니다
    차가 신호대기에 걸려 있을 때 
    천천히 나무의 이마를 적시며 흘러내리는
    노을 그 붉은 나무껍질 같은
    어렸을 때 동상으로 쓰리고 아팠으며
    지금은 지친 삶으로 고단합니다
    한때는 이혼서류에 사인할까 말까 망설였지만
    생이 한순간이므로 용서하는 손이기도 합니다
    빈 그릇마다 가득 김 오른 음식 퍼담으며
    슬픔도 다 제 몫이 있다며 등 두드리던 손
    나이테 같은 지문이 다 닳도록
    아름다운 일은 아무도 모르게
    구부러진 손가락 관절 영 펴질 기미 보이지 않는
    햇빛 좋은 오후 잠시 평상에 앉아
    졸고 있는 그 손

     

    *******************

    출처 카페 시인회의 -작성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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