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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
최태랑
둘이 있어야 한 벌이 되는 젓가락
식탁 위를 휘젓고 다니는 저 날렵한 것들
누구와 짝이었는지도 잊어버리고 돌아다닌다
한 식당에 있으면서도 제짝을 모르고 산다
인연은 봄비처럼 왔다가 이별은 소나기처럼 간다
우연찮게 만나도 옛 기억을 모른다
수저통에 들어가면 모두가 한통속
둘이 같이 있을 때면 포개져서 울력을 한다
젓가락은 잡는 사람에게만 몸을 내준다
어떤 입에서 쪽쪽 빨리다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무심하게 입속을 드나든다
처녀 입에 들어갔던 것이 노인의 입속으로 들고
청년 입속에 들고 나던 것이 중년 여인 입속에 든다
일용직 노동자처럼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생을 살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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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초록 바람』 2022년 천년의시작
최태랑 시인
『시와정신』으로 등단.
시집으로 『도시로 간 낙타』 등이 있음.
인천문학상, 시작상 수상.-작성자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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