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詩) 비의 손가락을 보다
    나의 이야기 2023. 3. 17. 00:01

     

     

     

    비의 손가락을 보다

                                                  마경덕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보았다

    가로등 불빛에 드러난 선명한 빗줄기를 

     

    마치 샤워기 물줄기처럼 

    일정한 간격, 똑같은 굵기로 쏟아지는 질서를 보았다 

     

    아득한 공중에서 

    빗물은 서로 부딪치지 않을 거리를 미리 정하고

    똑같은 무게로 몸을 쪼개 

    각각의 빗줄기가 된 것이었다 

     

    길가 배롱나무 품에 사뿐 안기거나

    가파른 정자 지붕을 타고 미끄러지거나 

    난폭한 바퀴에 깔리거나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을 것이다 

     

    지나가는 노란 우산도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자전거도 

    덜어내고 나눠서 가벼워진 빗줄기를 맞으며

    빗속을 무사히 통과하고 있다 

     

    늘 당연했던 빗줄기

    하늘과의 약속이 없었다면 까마득한 높이에서 떨어지는

    그 무서운 속도는 물대포가 되고 

    물폭탄이 되어 부상자가 늘고 

    비 내리는 날은 ‘재난의 날’로 선포되었을 것인데, 

     

    다행히 비는 저희들끼리 손가락을 걸고 

    수억 년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인데,

     

    세상은 비의 약속을 무심히 흘려듣고 

    시를 쓰는 시인 하나가 오늘밤에야 눈치를 챘다 

     

    굳게 걸었던 손가락을 풀고 

    가볍게 가볍게 비가 내린다 

    웹진 <같이 가는 기분> 2023년 봄호 -작성 김길순-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리드리히 니체의 기도  (71) 2023.03.19
    명언 한 마디  (75) 2023.03.18
    흙은 거짓이 없고  (99) 2023.03.16
    한무숙 문학관  (95) 2023.03.15
    윤오영 수필 <양잠설>을 보면  (79) 2023.03.14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