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 골판지 박스나의 이야기 2023. 7. 4. 00:01
골판지 박스
이삼현
깨지기 쉬운 육 남매를 품은 택배 박스
입을 앙다문 듯 양 날개를 접어 단단히 봉인되었다
밤늦게 택배기사 부축을 받고 도착한 엄마
여기저기 찍히고 부딪쳤지만
품 안의 자식들 발가락 하나 빠져나가지 않게 움켜잡고 있다
물어물어 달려왔을 천 리 길
과적돼 실려 오는 동안
함부로 내던져져 틈새에 끼었어도 묵묵히 견뎌냈을 한생이
아무렇지도 않다며 웃어 보인다
박스를 개봉하려다 말고 잠시 멈칫하는 것은
모서리마다 꼼꼼히 바른 테이프 자국
성한 곳 하나 없는 몸에 끈적끈적한 파스를 붙였기 때문이다
가다가 혹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아들네 주소와 이름만은 놓치지 않으려 꼭 쥐고 있다
배달이 끝나면 텅 비워져 버려질 엄마
알면서도 한사코 감싸 품어주었던 골판지 박스
제 안으로 잔뼈를 세웠지만
구멍이 숭숭 뚫린 골다공증을 앓고 있었다
⌜모덤포엠⌟ 2023년 7월호
이삼현 시인
2017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2022년 시집 『봄꿈』
모던포엠 작가회 회원
(출처) 마경덕 카페에서 옮겨옴 -작성자 김길순-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 호박꽃과 호박죽 (83) 2023.07.06 (詩) 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 (89) 2023.07.05 아름다운 농촌의 찔레꽃 (88) 2023.07.03 (詩)유리창 (67) 2023.07.02 사랑이란 무엇인가? (81) 2023.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