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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여지책
길상호개다래라는 열매가 있는데요
이름도 못생긴 것이
꽃도 보잘 것 없이 작아
산 속 깊이 밀려나 사는 넝쿨나무가 있는데요
아무도 봐주지 않는 그놈도
열매는 맺아야 하니까
나비의 입술이 필요했던 겁니다
은둔에 익숙해진 꽃으로는
얼굴 내밀 수 없어 궁여지책
잎들 하얗게 탈색시켰던 것인데요
잎을 꽃으로 바꾸기까지
제 속을 얼마나 끓였겠습니까
그 열매 날로 씹으면
혓바닥이 훨훨 탄다는데요
불기를 어르고 달래야 그제서
오장육부 따듯하게 덥히는
약재가 된다는데요
불을 약으로 만들기까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떨었겠습니까**************
길상호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 등,-작성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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