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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저녁 강에서나의 이야기 2023. 8. 13. 00:01
저녁강에서
복효근
사는 일 부질없어
살고 싶지 않을 때 하릴없이
저무는 강가에 와 웅크리고 앉으면
내 떠나온 곳도
내 가야 할 그 곳도 아슴히 보일 것만 같으다
강은 어머니 탯줄인 듯
어느 시원始原에서 흘러와 그 실핏줄마다에
하 많은 꽃
하 많은 불빛들
안간힘으로 매달려 핀다
이 강에 애면글면 매달린 저 유정무정들이
탯줄에 달린 태아들만 같아서
강심江心에서 울리는 소리
어머니 태반에서 듣던 그 모음만 같아서
지금은 살아있음 하나로 눈물겹다
저문 강둑에 질경이는 더욱 질겨
보일둥말둥 그 끝에 좁쌀 같은 꽃도 부질없이 핀다
그렇듯
세상엔 부질없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
오늘 밤 질경이 꽃 한 톨로
또한 부질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아직 하류는 멀다
언젠가 이 탯줄의 하류로 하류로 가서
더 큰 자궁에 들어 다시 태어날 때까지는
내일도 나는 한 가닥 질경이로
살아야겠는 것이다
저 하류 어디쯤에 매달려
새로이 돋는 것이 어디 개밥바라기별뿐이겠느냐
나는 다시 살고만 싶다******************
복효근(卜孝根, 1962 ~ )
출생 전라북도 남원
분야 문학 작가
시인. 1991년 “시와 시학”에 ‘새를 기다리며’ 등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자연의 소재로 일상의 생각과 성찰을 노래한 작품을 주로 창작하였다. 시집으로 “새에 대한 반성문”(2000), “목련꽃 브라자”(2005) 등이 있다. -작성 김길순-'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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