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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잣의 생각
    나의 이야기 2023. 8. 29. 00:01

     

     

     

    잣의 생각

                                                  마경덕

     

    식혜에 동동 뜨는 잣

    참 가볍다

     

    ​딱딱한 껍질에 숨어 한 송이로 부풀 때까지

    하늘에 바친 기도는 얼마나 무거울까

     

    겁 많고 속이 무른 잣

     

    높은 나무에 매달려 아슬아슬 간덩이를 키웠지만

    앞니로 깨물거나 망치로 살짝 건드려도

    지레 으깨져

     

    고작, 혀끝만 적시는

    한 알의 살점

     

    허기진 입을 채우려면 어림없을 거라고

    귀찮고 까다로운 제 몸을 믿었을 것인데,

     

    할머니가 누누이 일러준

    머리 검은 짐승은 믿지 못한다는 말

    잣나무에게 전해주지 못했다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흰 살점만 발라내는

    잣 까는 기계들

     

    탈피 된 알몸이 수북이 쌓이고

    순식간에 잣의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

     

    「시에」 2023. 가을호

     

    출처 - 잣의 생각 마경덕 카페 작성자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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