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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엄재국
석탄이란 말 속엔 캄캄한 고생대의 밀림이 떠오르지만
연탄이란 말 속엔 얼굴 시커먼 노동이 번질번질 묻어 있다
구멍을 맞추며 들이키던 석회 및 가스의 기운과
저 혼자 절절 끓다 갈색의 장판으로 구워지던 구들장
구멍마다 가난의 꽃들을 맹열히 피워대는
연탄이란 말 위엔 보글보글 된장이 끓고
혼자서 삼양라면 세봉을 뜯어 넣던 고교시절 자취방이 있고
연탄이란 말 속엔
늦도록 편물하다 불꽃의 향기에 눈감은 누이들이 있고
깜박 불 꺼트린 냉골의 이불 뒤집어쓰고 벌벌 떨던 세월이 있고
신 새벽
이제는 불꽃 다 죽은 연탄재란 말 속엔
푸석 푸석한 몸 쾡한 눈빛으로 골목에 나와
누군가의 발길에 몸채여 주는 속 시원함이 있고
연탄재란 말 속엔
그래도 비탈진 생 넘어지지 말아라
빙판길에 쫙 깔려주는 가루가 되는 몸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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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재국
2001년 <현대시학> 으로 등단.
시집 『 정비공장 장미꽃 』 『나비의 방』 -작성 김길순-'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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