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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상사화相思花나의 이야기 2023. 10. 9. 00:24
상사화
엄한정
5월에 불던 바람은 풀냄새 / 8월에 불던 바람은 꽃냄새
땅 끝에서도 만날 수 없는 여인
연인과 연인이 바람 속에 만난 상사화相思花
잎이 나서 흐드러질 때 / 꽃은 땅 속에 잠자고
꽃이 필 때 / 잎은 이미 시들어
상사화는 이별이 없다
한 이름으로 한 우물을 파지만
잎은 5월을 살고 / 꽃은 꽃대로 8월을 산다
사랑하며 등지고 사는 생애
잎에 서리 내리면 / 꽃에 눈물은 썩고
우리는 천형의 인연
그러나 자리를 옮겨 앉지 않았다
만날 수 없어 / 그 그리운 이별
나이 당년에 / 소슬한 청상의 생애가 끝나며
있어도 없는 듯이 / 空地에 밀물지는 고요
서러운 것들을 모두 사랑하리라
꽃은 멀리서도 보이나니
뿌리 홀로 / 땅 속에 웅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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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한정:
1936년 인천 출생. 서라벌예술대학 및 성균관 대학교 졸업.
1963년 <현대문학>과 <아동문학으로>등단. 시집으로 <낮은 자리> <연산담화>
미당시맥상,한국현대시인상본상. 성균문학상 본상.한국문인협회감사.
국제팬클럽현회 한국본부 이사 역임. 한국현대시인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