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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
민용태
오래 살라고 아이 이름을 개똥이라고 했던 것처럼
이 풀 이름이 개망초란다
개망초라니, 이 무슨 개망신이야
"신" 이 아니고 풀"초"
이희영 시인의 이 말이 신이 풀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아침마다 가는 등산길 오른쪽 산자락
그 많은 무덤을 젖히고 개망초가 무성하다
개망초는 그 큰 키까지 갓 쓴 선비 스타일이다
선비치고는 허리가 자주꺾여
피라미 꿰어 차고, 갈짓자걸음으로 갈 자격은 없고
심술이 많아 낚시꾼 발이나 거는 들판 깡패 정도
그런 형편없는 친구가 좋은 친구다 죽었는데 살아 남아
나의 등산길 오른쪽 옆구리의 쓸쓸함을 푸르름으로 채운다
개똥인지 개망초인지 개망신인지 살아 있음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좋은 친구는 살아 있는 친구다
오늘 아침은 개망초가 소자 증손자들까지 모두 끌고 나와 나를 반긴다
나도 신난다. 신이 풀이다
-월간문학 2023년10월호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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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용태(閔鏞泰, 1943년 1월 1일 ~ )는 대한민국의 시인 겸 대학 교수이다. 본관은 여흥.
스페인어 문학 작품을 번역하고, 스페인어 창작 시집을 출간하는 등 대한민국에 스페인문학을 널리 알리는 데 힘썼다. 스페인왕립 한림원 종신위원. 국제펜클럽 한국지부 이사장.
-작성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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