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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일서정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 시(市)의 가을 하늘을 생각하게 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가닥 꾸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홀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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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균의 시(추일서정)이었습니다. 여기에서는 낙엽에서 지폐로, 길이
구겨진 넥타이로 '구름'이 '세로판지'로 유추되는 이미지의 효용을 이해하게 됩니다.
언어에는 인간의 감성을 나타내는 사상의 기능도 있습니다.
이미지는 언어가 그려내는 그림이라 하갰습니다.
거기에는 시각적 색채의식이나 형태의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낙엽과 지폐는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무질서하게 흩어졌다거나 무가치하게 버려져 흩어진 그것을 발견하여
상호 의미를 부여하는 게 현대시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작성 김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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