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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과 크로포트킨의 개미설전체보기 2010. 11. 18. 18:00
비정규직과 크로포트킨의 개미說 김길순
요즈음 신문에는 비정규직 노조와 경찰이 충돌하여 수십 명이 다치는 불상사가 초래되었다. 신문을 보다가 문득, 옛날 농촌풍경이 떠올랐다. 그 때는 농경사회라서 들녘의 논밭이 일터였다. 아버지 어머니가 들녘으로 나가시면 우리들은 술심부름 물심부름을 하기도 하였다.
농부들이 논에서 모를 심는다거나 논을 맨다거나 하게 되면 점심때는 어김없이 마을 아낙네들이 밥 광주리나 함지박을 이고 왔다. 푸짐한 점심이 잔치처럼 걸게 펼쳐지는데 길가는 사람도 불러다가 먹이곤 하였다.
낯모르는 사람을 왜 불러다가 밥도 먹이고, 막걸리도 한 사발씩 먹여 보내는 것일까. 그 때는 배고픈 시절이라서 먼 길 가는 사람이면 영락없이 배가 고프기 마련이므로 허기를 면하기 위해서 불러다가 먹여 보내는 것이었다.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의 책에는 먹은 개미와 굶은 개미 이야기가 나온다. 들판(광야)에서 먹은 개미와 굶은 개미가 만났을 때 먹은 개미는 자기 체내에 있는 액체(양분)를 굶은 개미의 입에 넣어준다고 했다. 곤충도 먹은 곤충이 굶은 곤충에게 먹여주는데 인간 세상은 왜 이리도 시끄러울까?
빈들에서
두 마리의 개미가 서로 만났다.
희미한 눈을 도와주려고
더듬이로 서로서로 더듬으며
안부와 근황을 더듬거렸다.
우주선이 서로 도킹하듯이
그 후에 연료를 공급하듯이
먹은 개미가 굶은 개미에게 입을 맞추고
체내의 액체를 공급하면서
영양을 공급하고 있었다.
실직자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노동자건 경영자건 고임금자들이
밥을 덜어줘야 한다고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개미만도 못한 인간들,
기업주와 귀족노동자들에게
공생(共生)과 공영(共榮)을 설(說)하고 있었다.
- 「개미노동법」(황송문 시집 『적조현상』)에서 -
미물인 곤충들도 나눠먹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지나가는 길손에게 밥 한 술 덜어주듯 정규직과 기업주가 밥 한술 덜어주면 해결될 일을 가지고 저렇게 피터지게 싸우는 것을 보면 그 옛날 농촌 인심이 그립기만 하다. 세상에 인간이 개미만도 못하다고 해서야 어디 말이나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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