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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민 구
행복하니까 할 이야기가 없다
밥을 굶어도 좋다
오늘 뭐 먹었어?
뭐 하고 있어?
네가 물으면 떠오르는 게 없는데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다
꿈에서 은사님을 만났다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내 따귀를 때렸다
(거기서 행복하시냐는 말로 들은 걸까)
살아 계실 때 선생님이 그랬다
시인은 불행하다고
그림자가 없다고
꿈에서 맞은 매는 아직 얼얼한데
사랑이나 마음 같은 단어들은
강화도 펜션에서 보이는 나라처럼 멀고
나는 불판의 연기가
그쪽으로 날아가는 게 미안해서
평소보다 허겁지겁 고기를 먹으며
북쪽의 조그만 마을을
안개가 가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끝났다
내려놓을 말이 없다
밀고 나가서 쓸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불행은 내게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며
너는 과거에도 그랬다고
타이르는데
행복해서
남의 말이
하나도 귀에 들려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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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구
인천 출생.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배가 산으로 간다』 『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해』삼척 월천 솔섬 일출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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