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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리 나지 않는 글나의 이야기 2024. 3. 22. 16:01
소리 나지 않는 글
추프랑카
아름다운 국어책을
무척 사랑했지만
2학년이 되도록 글을 읽지 못했다 교실 뒤에서 무릎 꿇고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창문을 닦고 변소 청소를 했다 소리 나지 않는 나의 글 언니들은 큰소리로 나, 너,
우리…… 교과서를 읽고 또 읽었다 어머니, 아버지……날마다 아버지를 먹었다
허수는 먹고 먹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허수를 먹고 허수 속에 웅크린 낱말, 아버지
선생님은 내게 읽기를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모든 낱말들이 아버지란 발음에 잡
아먹히는 줄 까맣게 몰랐던 나의 선생님
엄마는 무논 벼 베기를 미루고 숯다리미에 숯불을 담아 한복을 다려 입고 떡 한
시루를 쪄 교무실로 이고 왔다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잃은 나는 착하신 선생님과 착하신 엄마를 하루 종일 입
안에 넣고 굴렸다 아버지, 아버지뭉게구름 아래 빈 시루를 내려놓고 오른손잡이인 엄마는 왼손으로 삐뚤빼뚤 글자
를 썼다 나, 너, 우리…****************************************************
* 추프랑카
경북 달성 출생.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작성 김길순-구글 이미지 발췌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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