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도장
김우진길 건너 도장집 김씨, 평생 나무를 찍어 넘긴 옹이진 손이 목도장을 파고 있다
조각칼 끝에 밀려나는 나무의 속살, 노인은 십분 만에 나무 한 그루를 파 헤쳤다
백년을 써 먹어도 끄떡없을 물푸레나무 도장, 둥근 방 한 칸이 이름 석자를 품었다
모음과 자음이 서로 부둥켜안았다 물푸레나무로 도끼자루를 만들던 아버지도
막도장처럼 살다 가셨다닥치는 대로 살아온 내 발자국 같은, 서랍 속에 막 굴러다니는 막도장, 나는 막도장을
가볍게 보고 집 한 채를 거덜낼 뻔 했다 처남은 함부로 도장을 찍어 가장골 무논 엿
마지기를 말아먹었다 나는 오늘 전세계약서에 막도장을 꾹, 눌러 찍었다 두 해 동안
우리 네 식구 발 뻗고 살 방 한 칸을 막도장이 내주었다 물푸레 도장을 찍었을 때 내
손에 파랗게 물이 올랐다 나는 집 한 채를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닌다
***************************************************************************************
김우진
전남 광양 출생. 경기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8년 제10회 수주문학상 수상,
2008년 제6회 전국문화인창작시 대상(국회의장상), 2016년 농민신문신춘문예 시 당선홍덕기 사진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