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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름한 주머니들 외 1편
    나의 이야기 2024. 12. 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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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경덕 시인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신발론』 『글러브 중독자』 『사물의 입』 『그녀의 외로움은 B형』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북한강문학상 대상. 두레문학상. 선경상상인문학상. 모던포엠문학상. 김기림문학상. 미래시학문학상.
    문학에스프리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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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름한 주머니들 외 1편

     

                                         마경덕

     

     

    골목길을 등지고 돌아앉은 그 집

    닫힌 작은 창문 하나, 그 너머가 궁금했다

     

    창을 두드리다 돌아서는 저녁 햇살의 꼬리를 밟은 적이 있다

    기웃거리던 내 호기심이 창틈에 끼인 적도 있다

     

    할 일이 없어 보이는 간유리 창은

    햇살 한 줌 꽂을 수 없는 쓸모없는 바지 뒷주머니 같았다

     

    흘낏 그 길을 지나쳐오면 그 집은

    내 생각 밖으로 달아나버렸다

     

    길가 플라스틱 통에 흰 냉이꽃이 한 움큼 필 무렵 문득

    집의 얼굴이 궁금했다

     

    이 집에 누가 사나요?

    글쎄요…

    모르겠네요

    난 몰라요

     

    닫힌 창 너머가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얕은 뒷주머니였다

     

    그렇다면 꽃이 지기 전, 뒷골목 얽힌 골목을 돌아돌아 그 집을 만나러 가리라

     

    오늘도 먼지 낀 그 창을 무심히 지나왔다

    어느새 냉이꽃이 두 번이나 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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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노트

     

    바쁘게 살다 보면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는 기억이 있다. 마주치면 아, 그랬지 하면서도 돌아서면 또 잊어버리는 허름한 약속이 있다. 약간의 아쉬움도 오래 묵히면 아린 그리움이 된다. 그런 쓸쓸함은 나에게 시를 쓰게 한다.

    정규직

     

    빨간 플라스틱 물통

    십 년 넘게 화장실 한 귀퉁이가 그의 자리다

    물을 반쯤 담고 벽에 붙은 수도꼭지만 올려다본다

    어쩌다 쏟아지는 수도꼭지의 말을 살뜰히 챙긴다

     

    수도가 사라지면 물통은 어디로 갈까

     

    지하방 여자는 늘 변기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물로도 씻기지 않는 그 냄새에 나는 진저리를 친다

     

    “제발 담배 피우지 마세요”

     

    공용화장실 벽에 경고를 붙여도 막무가내 달려드는 악취는 정규직이다

     

    마주치면 상냥한 그녀

    꼬박꼬박 예의가 바르다

     

    내가 일층에 세들기 전부터 그녀는 지하방에 살고 있었다

    물통과 수도꼭지처럼 담배에 꽉 물린 그녀도 정규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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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노트

     

    마당이 있는 감나무집 뒤꼍에 세들었다. 그 집의 고요를 빌려서 나는 시를 쓴다. 벌써 십 년이 넘었다. 그런데 냄새가 자꾸만 나를 밀어낸다. 그녀와 함께 쓰는 공동화장실 빨간 물통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한발도 나갈 수 없는 물통은 다행일까, 라고 생각해본다. 오래도록 지하방에 사는 골초인 그녀, 내가 사랑하는 고요만큼 담배도 그녀에게 행복을 가져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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